<스페인 히로나, 그라피티>
언젠가, 골목길을 걷다가 위 그림 같은 요란한 낙서를 본 기억이 한번 쯤 있을 것이다. 무언가 전달하려는 메세지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일반인인 우리들로
서는 무슨 뜻인지 한번에 알아보기는 힘들고, 왠지 모르게 미국이나 유럽의 뒷골목을 장식해야 만 어울릴 것만 같은 이러한 낙서들. 무엇인가 어렴풋하지
만 잡지나 영화에서 가끔씩 본 것 같은데…하는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굳이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서방 세계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미 한국에서도 이러한 요란하면서도 중독성 강한 ‘예술적 낙서’ 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종종 있
다. 특히나 서울의 홍대 앞, 이런 낙서들이 거의 예술 수준으로 존재한다. 누군가는 홍대 앞의 그것들을 ‘아시아 최고 수준’ 이라는 말로 예찬하기도 했다.
어쩌면 내가 방금 내뱉은 저 말은 이미 모순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이미 낙서가 아닌 ‘예술’ 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 그라피티를 아시나요…?
<스페인 히로나, 그라피티>
그라피티 (이탈리아어: graffitto - 복수형 graffitti)란 벽이나 바위를 긁어서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이나 문자·낙서를 말하는데, 간단한 스크래치 표현에서부
터 정교한 벽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포함될 수 있다. 현대 들어 에어로졸 스프레이는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미술 재료가 되었다. 처음 발생시
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라피티를 소유자 허락 없이 하는 것은 재산 손해로 처벌을 받거나 예술 문화의 파괴(반달리즘)으로 여겨졌다. 한편, 그라피티
는 사회,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요긴하게 쓰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화랑이나 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있기도 하지만 대개 버스 정류장
이나 기차역, 운동장, 건물에 그려져 있어 사람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하기도 한다.
(출처: 위키백과)
누군가는 낙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벽화, 그림, 길거리 예술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인식되는 이것의 정식 명칭은 그라피티(graffitti)
다. 1960년대 말 뉴욕의 거리 곳곳에 흑인·푸에르토리코인과 같은 소수민족들이 자연발생적으로 거리의 벽화를 그리는 일에 기원이 되었던 것이 시초로
현재는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통해 예술로 승화되어 자기표현방식의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것처럼 홍대의 그라피티는 한국에서의 명성은 물
론, 그 실력으로만 따지자면 세계 어딜 내놔도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겠지만, 그만큼 그라비티
라는 예술적 행위가 홍대라는 장소의 특성과 어울려 하나의 문화 생산물로서 순기능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 유럽에서 만난 그라피티의 매력
<이탈리아 피렌체, 그라피티>
그라피티의 발생은 미국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유럽 역시 자유로움과 저항정신을 추구하는 특유의 문화와 맞물려 가히 그라피티의 천국이라 불릴 만한
곳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유럽을 여행하기 전 막연히 생각했던 유럽의 이미지를 크게 두가지로 나누자면, 첫째는 영국이나 프랑스,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
으로 대표되는 신사적이고 중세부터의 긴 역사가 스며있는 유럽의 느낌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을 중심으로 프랑스, 영국 등 모든 유럽
에 골고루 퍼져 있을 것만 같은 빈티지하고 히피적인 자유로운 이미지였다. 그리고 내가 유럽땅을 밟았을 때,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이미지와 실제의 큰
줄기는 대충 맞아떨어졌다.
<이탈리아 피사, 기차(국철) 의 겉모습을 수 놓는 것은 다름 아닌 그라피티다.>
이탈리아의 피사(Pisa) 기차역. 로마로 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연히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플랫폼 안으로 들어오는 기차들의
면모 하나하나가 심상치가 않은데, 기차의 겉면에는 모두 하나같이 문신, 아니 판박이라도 새긴 듯 그라피티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냥 자전거나 오토바이도아니고, 하다못해 지하철도 아닌 국철, 기차에 저렇게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니. 이거 자유로워도 조금 너무한 것 아닌가?
그라피티도 그 속성에 따라 여러가지로 구분 할 수가 있는데, 허가받은 장소에 그리는 것과 허가받지 않은 장소에 그리는 것도 하나의 구분 척도가 된다.
과연 기차 위에 그려진 그라피티는 어떤 쪽일까? 그라피티와는 약간 다른 성격의 것이긴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통영 동피랑 마을을 중심으로 마을의
집집마다 그림이 그려진 벽화마을이 뜨고 있다. 이런 벽화 그리기 운동은 NGO와 지자체가 합작하여 만들어 낸 일종의 도시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것은 공식적으로 ‘허가가 된’ 것이다. 그라피티 역시 때때로 마을 자람들의 요청에 의해 그려지기도 하고, 또는 지자체 정부의 도시 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되기도 하는데, 저기 피사를 달리는 기차에 그려진 그라피티의 정체는 알 수 없다. 이탈리아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허가 따위는
개나 줘버려, 라고 생각해버리기 십상이지만, 저렇게 지우려는 흔적조차 없이 유유히 달리는 것을 보면 고의적인 것 같은 느낌도 다분하다. 어쨌거나, 개
인적인 생각으로는 이탈리아에는 그라피티가 아주 잘 어울린다. 그게 기차든, 벽이든 골목의 바닥이든 상관없이 어디든 잘 어울려 좋은 느낌을 만들어 내
는 것 같다. 오래된 이탈리아의 도시가 지닌 역사와 그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빈티지한 매력이 철철 넘치게 해 주는 것이다.
*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라피티 제작 현장을 만나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이 아름답고 열정적인 지중해의 빛나는 도시에서 우연히 그라피티를 제작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역시나 그라피티를 대표하는 코드는 자유로움과 열정일 것이다.
뜨거운 지중해의 햇볕아래 웃옷은 훌훌 벗어버리고 자유로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힙합 팬츠를 입은 채 스프레이질에 여념이 없는 두 사람.
멀리서 보면 정말 영락없는 미술 회화 작품인데, 정작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붓과 팔레트가 아니라 스프레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들의 스프레이
가 지나친 곳은 어김없이 새로운 색의 선이 더해지고, 선에 선이 더해지면서 눈앞에서는 놀랍게도 하나의 예술작품이 완성되어 간다.
<예술작품을 위한 그들의 준비물은 각종 색상의 스프레이, 그리고 자유로운 복장, 자유로운 마인드, 뜨거운 열정이다.>
<큰 밑그림으로 대충의 구도를 계획한 후 세세한 부분들을 조금씩 완성해간다. 색이 차지 않은 부분들도 아마 곧 완성될 것이다.>
<기존에 있던 그림 위에 새로운 작품을 그리는 모습. 대략의 구분선 정도로 구도를 정한 후 거침없이 스프레이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열심히 작업중인 벽면 너머로 이미 완성된 부분도 보인다.>
<그들이 스프레이가 지나 간 곳은 어김없이 새로운 예술이 탄생한다.>
<눈에 익은 반가운 모습도 보인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마스터 요다.>
<마스터 요다가 있다면 다스베이더도 빠질 수 없다. 그런데 무언가 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다스베이더가 들고 있는 것은
광선검이 아니라 스프레이다. 이것이 바로 그라피티 예술가들의 센스. 포스가 언제나 함께하길! >
* 낙서 혹은 예술, 선택은 당신의 몫.
무엇을 낙서로 보고, 무엇을 예술로 볼 것인지는 여러분의 몫이다. 누군가는 평론가나 다른 예술가들로 구성된 이른바 예술계(Art-World)가 예술을 구분하
고 정의 내린다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예술이란 어떠한 해답처럼 정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그린 낙서가 다른 누군가에겐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진한 감동을 선사할 수도 있는 것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 어떤 행위나 산물이 이런저런 이유로 어느 순간 예술이 되기도 한
다. 내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우연히 만났던 그라피티를 하던 두 젊은이의 작품은 내가 만났던 그 여느 예술작품에 뒤질 것이 없는 훌륭한 것이었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완성되어 가는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앞에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탄성을 거두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하나의 해답이 아니라 수많은 관점 중 하나라는 것을 인지해주기 바란다. 혹여 나와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분
이 계시다면, 그저 다른 시각의 하나로 인정해 주시길 바란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래피티를 만드는 사람들의 열정은 매우 뜨겁다는 것이다. 지중해의 따가운 햇볕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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