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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모든 것/China Story

중국 고건축에 숨겨진 재미있는 비밀.

 

 

#1. 음과 양, 그 오묘한 조화의 세계

 

 

중국은 예로부터 음(陰) 과 양(陽) 의 조화를 중요시해왔다. 음양은 고대로부터 중국에서 하나의 철학적 사고로 인식되어 왔지만, 서구의 인식들이 주류

가 되고 난 이후에는 과학을 신봉하는 이들로부터 비이성적인 미신의 일종으로 치부 당하기도 한다. 음양이라는 것이 정말 그 효용이 있는지 없는지 필자

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고대 중국인들은 항상 음양을 가지고 주변의 환경을 해석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남자는 양(陽), 여자는 음(陰)으로 인식되어 왔다.>

 

 

우리도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음양의 구분은 아마도 남여의 구분일 것이다. 남자는 양의 기운을 가진 존재로, 여자는 음의 기운을 가진 존재로 인식

되어 왔다. 그렇기에 남녀가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것은 생물학, 사회학 등 근대의 학문적 설명틀을 끌어들이지 않고서 음양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자연스러운 순리였던 것이다.

 

 

 

#2. 베이징 자금성 속에 숨겨진 음양의 원리

 

 

그런데, 이 음양이라는 인식의 폭은 너무나 넓어서 비단 남여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고대 중국인들은 모든 사물과 모든 현상

을 음양을 통해 파악하고자 하였기에 모든 요소요소에 이러한 흔적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의 고건축에도 알게 모르게 이러한 영향이 스며들게

되었다.

 

 

 

 

 

<자금성의 정문인 천안문의 모습>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여행하면 가장 먼저 가게 되는 곳은 어디일까? 아마 조금씩의 차이는 있겠지만, 고궁 (자금성) 이 아마 가장 유력한 1순위

후보가 아닐까 싶다. 예로부터 서양세계엔 금지된 공간(Forbidden Castle) 으로 신비하게 여겨졌던 곳이고, 지금도 그 웅장한 규모와 자태때문에

찾는 이로 하여금 여전히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이기도 하다.

 

그 유명한 천안문은 황제가 기거하던 이곳 자금성의 정문이다. 천안문과 천안문 앞에 걸린 거대한 마오쩌둥 초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에서

부터 이 거대한 고궁으로의 여행은 시작된다.

 

이 고궁이 얼마나 거대한지 감이 잘 안 온다면 고궁 안에 방이 총 몇 개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100개? 1000개? 아니면 10000개?

정답은 바로 9999개다.  그렇다면 왜 굳이 9999개인가? 10000개가 더 깔끔하고 위대해 보이지 않는가? 기왕 9999개나 만들었다면 하나 더 만드는 것이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딱 9999개만 만든 것일까?

 

이 역시 음양과 관련되어 있다. 중국에서 1, 3, 5, 7, 9 는 양의 수이다. 반면에 0, 2, 4, 6, 8, 은 음의 수이다. 다르게 말하면 양의 수는 전자들은 산 사람들의

숫자로, 음의 수인 후자들은 죽은 자들의 숫자로 인식되어지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대 중국인들의 인식 속에는 산 사람이 사는 집에는 양의 수를 사

용해야 한다는 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양의 수 중에서 가장 큰 것이 바로 ‘9’ 이다. 이보다 더 클 수는 없는 것이다. 9는 양의 수 중 으뜸이요, 이는 곧 황제의 수다. 9999개의 방이 있는 이

곳이 바로 황제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 금지된 공간인 자금성인 것이다.

 

 

 

 

< 앞에 문이 보이는가? 문에 박힌 징들을 유심히 관찰해보자. >

 

 

자금성에는 9999개의 방이 있고, 이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벽들이 있고, 이 광활한 공간을 단절시키고 연결하는 수많은 문들이 있다.

문들을 자세히 보면 문에 쇠로 된 둥근 징 같은 것들이 줄을 맞추어 나란히 박혀 있는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고대부터 적들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동시에 장식을 위해 박아놓은 것인데, 베이징 고궁 이외의 다른 중국 건축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고궁의 문들 중 황제가

출입하던 문에는 가로 9개, 세로 9개씩 총 81개의 징이 박혀 있는데, 이 역시 9가 최고의 양수, 황제의 수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혹시나 고궁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정말 81개가 맞는지 세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될 것이다.

 

 

 

#3. 션양 고궁에도 음양의 비밀이 숨어있다…?

 

< 중국의 고궁은 베이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랴오닝 성의 션양에도 고궁은 존재한다.>

 

베이징의 고궁, 자금성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에는 베이징의 자금성 이외에도 ‘고궁’ 이라 불리는 곳이

한군데 더 있다. 바로 동북 요녕성의 션양에 위치한 션양 고궁인데,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우기 이전 누르하치가 여러 여진족들을 통일하고 후금(後金)을

세웠는데, 그 중심지가 바로 지금의 선양이었다. 누르하치와 2대 태종이 선양에 건립한 궁으로, 자금성에 비하면 규모는 보잘 것 없지만 만주족만의 특징

과 한족의 양식이 결합된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고궁이다.

 

선양고궁은 비록 만주족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한족 문화의 영향을 함께 받은 건축물이다. 역시나 이 곳에도 음양의 이치가 숨겨져 있다.

 

 

 

 

 

 

 

 

 

고궁의 지붕을 자세히 보면, 지붕에 무언가 모를 동물들이 나란히 줄지어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잡상(雜像)이라고 하는 이 동물들은 행운의 상징이기도

하고 궁과 황제, 황실을 지키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얼핏 보면 호랑이, 원숭이 등 친숙한 동물인 것 같지만 실상은 이 모두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 전설 속의 길한 동물들이다. 그리고 앞의 인물상은 아마 잡상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삼장법사일 것이다.

그런데 눈여겨볼 것은 이 동물들도 결코 짝수로 줄을 서 있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역시 음양의 이유 때문이다. 참고로 이 잡상들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베이징의 자금성 중 태화전인데, 유일하게 11개의 잡상을 자랑하는 이곳은 그야말로 황제의 위엄을 제대로 나타내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 Epilogue. 아는 만큼 보인다.

 

 

 < 션양 고궁의 실루엣은 자금성과는 다르다. 만주족 특유의 건축양식이 잘 살아있다.>




이렇듯 중국의 고건축들은 어느 하나 허투루 지어진 것이 없다. 혹시나 중국을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이러한 것들을 미리 알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이다. 물론 여행에 정답은 없다. 자신이 보고싶은대로 보고, 느끼고 싶은 대로 잘 느낄 수 있다면 자신에게는 최고의 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냥 베이징의 고궁을 방문하는 것보다, 그 장소에 대한 역사와 배경, 더 나아가 사소한 이야기까지 알

고 있다면 그 장소는 더욱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기왕 돈과 시간을 들여 떠나는 여행이라면,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얻어서 돌아오는 게 더 보람

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