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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모든 것/09'TheGreater Mekong

웬양에 온 이유, 인간이 자연을 마주하였을 때.




웬양에 온 이유, 인간이 자연을 마주하였을 때.




내가 웬양에 온 단 한가지 이유. 그 이유를 마주하기 위해 털털대는 삼륜차에 몸을 실었다. 잘 포장된 도로를 달려도 엉덩이가 불안한 삼륜차인데,

비포장의 산길을 털털대며 수십분을 달리니 뒷자석에 앉은 내 엉덩이가 남아나질 않는다.

내가 짐을 푼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삼륜차로 30분 정도가 걸린다. 삼륜차를 타고 달리는 도중 만나는 창밖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아이들은 그 어느 곳보다 순수해보였고, 하늘은 그 어느 지방보다 높고 푸르렀으며, 그 아래 녹아있는 공기는 내 코가 기억하는 한은 가장 맑은 것이었다. 

위엔양의 여름 태양은 푸른 하늘 속에서 그 어느 보석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울퉁불퉁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 삼륜차가 가끔씩 깜짝깜짝 정차를 반복한다. 길을 막고 서는 것은 대부분 닭 아니면 오리인데, 이번엔 오리떼들이다.

부모님 어린 시절 집에서 닭기르고 개키웠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이처럼 마을 길가를 오리가 점령한 것은 듣도보도 못한 광경이다. 정말 자기들

나름대로는 앞에 오는 차량들을 피하느라 열심히 뛰어가는 듯 한데, 뒤뚱거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오리걸음이라 그 귀여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질 수

밖에 없다. 역시 오리걸음은 오리가 해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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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떼를 지나쳐 다시 조금을 더 달려서 마침내 내가 이곳 위엔양에서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위엔양 티탄(梯田). 계단식 논이다.


혹시 기억이 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난 분명히 기억한다. 초등학교때 사회시간에 백지도를 풀다보면, 논은 크게 바둑판식 논과 계단식 논

두종류로 나눌 수 있다 - 는 내용이 나온다. 요즘엔 아마 이런내용은 교과서에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론 아주 한심한

분류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부모님 선생님 말 잘듣는 아이였던 나는 열심히 외워댔고, 이렇게 지금까지도 저것을 기억하게 되었다 -.-


계단식 논은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내가 알기론 강원도에 몇군데가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처럼 거대한, 그리고 수백년에 걸쳐 이루어진 곳은 없다.

중국에는 위엔양 말고 광씨 장족 자치주 쪽에 롱성티탄이라는 유명한 곳이 한 곳 더 있다. 둘다 수백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롱성은 광씨 장족들에

의해서, 그리고 이곳 위엔양은 하늬족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참고로 위엔양은 소수민족 중 하나인 하늬족 자치현이다.

어쨋든 롱성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서양 배낭여행자들을 비롯하여 서양 세계에 더 유명한 곳은 위엔양이고, 한국, 일본에 유명한 곳은
 
롱성인 것 같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아무래도 롱성은 꾸이린(계림) 과 가깝기 때문에 그쪽을 찾는 한, 일 여행객들에게 유명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대륙의 옛 이야기중에 우공이산(愚公移山) 에 얽힌 내용은 누구나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흙을 퍼나른 우공이라는 사람이 결국엔 산을

옮겼다는 이야기인데, 위엔양의 티탄을 보고 있으면 비슷한 것이 떠오른다. 산을 옮기지는 않았지만, 저 거대한 산을 논으로 바꾸어 놓았으니 말이다.

서양에 '노인과 바다' 가 있었다면, 이곳 위엔양에는 '하늬족과 산' 이 있다. 그들은 수백년 째 산과 싸워왔고, 세대와 세대를 거쳐 결국에 지금과 같은

모습의 티탄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처음 누가 맨 처음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사람은 누구보다 용감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연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 없고 힘없는 존재인지, 인정하기 싫은 자존심을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모두에게 비웃음만을 사던

콜럼버스나 에디슨이 그렇게 큰 업적을 남겼던 것처럼, 비록 이들처럼 이름은 남기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후손들이 적어도 양식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오게 만든 위대한 그 조상 덕분에 위엔양 티탄은 지금 이렇게 위대한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조금 더 논 가까이로 내려왔다. 논은 정말 놀라운 생태의 보고이다. 한국에서 차창 밖으로 펼쳐진 논만 봐 오던 나에게 직접 바라보는 논은 그야말로

경이 그 자체였다. 수많은 벌레들과 잠자리들이 춤을 추는 이 곳은 자연과 인간의 위대한 합작품이다. 논은 비록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고 인간이 자연을

빌려쓰는 형태를 띠고는 있지만 자연을 소모하거나 파괴하는 주체는 결코 아니었다. 논과 빌딩숲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논 속에서 반가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논 사이로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휙휙 지나가는데, 내가 잘못 본 것인가 했다.

그런데 막상 논을 떠나려 하려는 찰나에 그림자의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리다.

그제서야 나는 마을에 그토록 오리가 많았던 까닭에 대해 이해가 갔다. 오리농법. 故 노무현 대통형이 봉하마을에서 오리를 풀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오리농법이 어디에서 처음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위엔양의 티탄에서는 모두 오리를 풀어 천적들을 잡아 먹게 하고 있었다.

위엔양 티탄의 규모를 생각해볼때, 마을마다 넘쳐나던 오리들은 당연한 풍경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보게 된 잠자리도 너무나 반가웠다. 난 분명 나이가 많은 것이 아닌데,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잠자리가 많았다 - 라는 대사를

하나의 팩트로서 해야만 하는 시기에 와 버렸다. 나이가 들어보여도 사실이니깐 사실을 말할 수 밖에 없는 거지만.

오랜만에 본 잠자리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무언가 징그러운 듯 하면서 징그럽지 않은  - 거미는 징그럽다. 잠자리는 분명 징그럽게 생겼음에도 징그럽지 않다 - 그 느낌이 변하지 않았다.
 
다만 변한것이 있다면 그때보다 자란 나의 몸뚱아리 뿐. 내 마음은 아직 어린시절 그때만큼에 쪼끔 못미칠 정도로 순수하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한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내가 지금 본 이 티탄은 위엔양의 티탄중 가장 볼 품 없고 유명하지 않은 곳이라는 것이다.

위엔양 부근에 총 10여군데의 티탄이 있는데, 이건 맛뵈기에도 못든다는 이야기를 삼륜차를 운전한 하늬족 아줌마가 해 주었다.

그렇다면 다른 곳은 어떻다는 이야기일까? 정말 상상 이상의 현실이 존재하는 것일까?

다른 교통 수단이 없어 삼륜차를 대절해가면 비용이 약간 들것같긴 하지만, 이곳까지 왔으니 그냥 돌아가기도 싫었다.

위엔양 티탄중 최고는 두어이슈(多以樹)다. 위엔양의 티탄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일출을 볼 수 있는 곳.

나는 내일 새벽 이곳에서 일출을 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자연이 먼저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대로 다루길 원했다.

산이 먼저 있었다. 산으로 둘러쌓인 척박한 땅 가운데 인간이 도착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머물러 살며 양식을 얻기를 원했다.

그들은 산을 깎아 논을 만들었다. 하지만 산을 없애지는 않았다.

산의 모습을 그대로 두면서 양식을 얻을 수 있는 논과 산이 어우러진 티탄을 만들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년이 지나고, 수백년에 걸쳐 웬양에 계단식 논인 티탄이 만들어졌다.

자연과 인간의 위대한 합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