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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모든 것/09'TheGreater Mekong

하늬족의 무한도전이 만들어 낸 감동.

 

 

 

 

#1. 비몽사몽, 감동으로 향하는 길

 

 

내 머릿속이, 지금 내가 내 눈에 보이는 풍경들이 마치 저 사진과 같았다. 무엇을 보고 있는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새벽 4시. 알람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옥상에 위치한 구석방에서 나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던 것이 이제서야 조금씩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제 만났던 삼륜차를 운전하는 야오족 아줌마에게 5시에 일출을 보기 위해 두어이슈로 간다고 말을 했었다. 이번엔 나 혼자가 아니라

어제 우연히 돌아오는 길에 만났던 엘레이나와 함께다. 그녀는 조금 떨어진 다른 숙소에 묵고 있어 야오족 아줌마가 나를 먼저 깨운 후 그녀를 데리러

가기로 되어 있었다.

 

‘ 똑똑똑’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둠 속에서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내 귀를 때렸다. 하지만 괜찮아. 난 이미 모든 채비를 마쳤으니까.

물론 아직 정신은 챙기지 못했다.

 

스코틀랜드인 엘레이나의 숙소 앞으로 가니 이미 그녀가 나와 있었다. 새벽 5시, 웬양의 티티엔 중 으뜸이라는 두어이슈로 향했다. 야오족 아줌마의

삼륜차는 심하게 덜컹였지만 그마저도 졸음앞에서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했다. 밖은 아직도 어두웠고 어둠속에서 30분을 달려 두어이슈에 도착했다.

 

티티엔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탑에는 이미 사람들 몇몇이 삼각대를 세워놓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도 함께 얼른 삼각대를 세우고 나름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잠시 후 내 바로 옆자리에 중국의 방송국 카메라가 와서 자리를 잡았다.

 

 

 

 

 

 

 

 

 

 

      

 

 

 

 

 

 

 

 

 

 

 

 

 

 

 

 

 

 

두둥실 떠오른다. 누군가는 저것을 희망이라고 불렀다. 매일 떠오르는 희망을 보며 하늬족들은 이 산과 싸워온 것일까.

거대한 산을 깎아 이루어진 이 거대한 계단식 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보다 훨씬 이전부터 험난한 자연과

사투를 벌여 수백년에 걸쳐 지금과 같은 모습의 계단식 논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의 눈부심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눈앞에 펼쳐지는 상상 이상의 광경은 때때로 사람들

에게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엘레이나, 어때? 오길 잘한 것 같지?”

 

망설이던 그녀에게 같이 가자고 청했던 것은 나였다. 물론 삼륜차 경비를 아끼기 위한 목적이 컸지만, 때로는 혼자가 아닌 함께인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말없이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그녀뿐 아니라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였

다.

 

 

 

 

 

 

 

 

 

 

 

 

 

 

  #2. 하늬족의 무한도전이 만들어낸 감동.

 

 

 

 

 

 

 

 

 

 

 

 

 

 

 

 

 

 

 

 

 

 

 

 

 

 

 

 

그냥, 관광지라고 하기엔 이곳이 풍기고 있는 포스가 너무나 강했다. 비록 두어이슈는 하늬족의 계단식 논 중에서 일출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으

로 여행객들을 위한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관광객들에게 보이기 위해, 그들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얻어내려고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나를 감동시켰다. 수백년,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이전부터 이 계단식 논은 그들의 삶이었고, 생활이었고, 자연과 싸워 이루어낸

그들의 위대한 문화였다. 하늬족의 무한도전이 만들어 낸 살아있는 감동이다. 티티엔(계단식논) 의 풍경에 취해 한껏 감상에 젖어 있던 내 어깨를 두

드리며 엘레이나가 말을 걸었다.

 

 

“ 근데, 한국인들이나 중국인들, 아니 모든 아시아인들에게 ‘쌀’ 은 특별한 의미잖아. 그냥 먹는 음식, 주식(主食) 이기 이전에 하나의 특별한 문화 아냐?

  내가 가진 가이드북에도 그렇고,  ‘쌀 문화’ 을 빼고서는 동양을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하던데, 여기 와보니 그 의미를 알 것 같아.”

 

 

그랬었나. 아니, 아닌 것 같다. 사실 우리에게 쌀은 뭐랄까, 너무 가까이에 있고 당연한 것이기에 그것이 특별한 우리만의 ‘문화’ 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인식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농부들이 매일 피땀 흘려 농사를 짓고 우리가 그런 쌀을 매일 먹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인식하고 있지는 못했다.  어떻게 보면 엘레이나는 이방인이니깐, 아니 조금 더 부드럽게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와는 다른 문화 속에서 다른 시각을 키워

왔기에 그것을 한눈에 금새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하늬족의 무한도전이 만들어 낸 감동은 지금 이곳의 우리에게 한번, 그리고 이 후 누

군가의 밥상 위에서 다시 한 번 감동을 줄 것이다.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해는 완전히 하늘에 자리를 잡았다. 빛나는 태양 아래의 티티엔은 내가 봤던 그 어느 광경보다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

다. 논의 푸르름과 논 사이사이에 가득 찬 물이 반사시키는 금빛 햇살은 모두 내 가슴속으로 고스란히 돌아와 깊숙히 박혔다. 난 앞으로도 절대 이 광경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야오족 아줌마를 비롯한 이곳의 모든 토박이들은, 지금 7월의 티티엔은 가장 멋이 없을 때라고 했다. 모내기를 시작할 때 쯤인 봄의 티티엔은 물로 가득

차 있어 그 사이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어우러진 일출의 장관이 정말 천국의 모습을 이루어낸다고 한다.

 

하지만, 난 아쉽지 않았다. 이미 난 이곳에서 천국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만 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도 내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