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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모든 것/China Story

조심하라우! 그림자 넘어왔으야.






















평화로웠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시야를 가로막는 것은 없었다.

마치 가까운 어딘가에 바닷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느낌이 들만큼, 


따가운 햇살만이 내려쬐는 한가로운 거리로 삼륜 자전거며 손수레들이 가끔씩 지나다닌다. 고운 색동옷을 차려입고 삼륜차
 
뒷자석에 앉은 아이는 
조금전 무슨 선물이라도 받은 듯 들뜬 마음으로 그것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고 그런 꼬마 아가씨를

옆좌석의 엄마는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한산한 거리의 한 구석 무심하게 놓인 정자에서는 마을 노인들이 마작판을 벌였다. 어떤 패가 손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누구는

얼굴에 미소를 한아름
가득 안고, 누구는 애꿎은 담배만 더욱 뻐끔일 수 밖에 없다. 마작판에 앉은 사람들의 속은 이렇듯

제각각이지만 어쨌거나 화창한 하늘 5월의 바람아래
모두들 늦봄을 즐기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토록 평화롭게만 보이는 이곳은,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을 마주 본 중국의 도문이다.




























한자로 된 중국어만 있다면 오히려 덜 낯설지도 모른다. 매일 그렇게 보던 한글이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졌다.

물론, 이곳 도문 뿐 아니라 연변 지역 모두가
그러하지만, 북한 땅을 바로 마주하고 있어서인지 느낌은 더욱 묘하다. 

한글이 적혀있는 기념품 가계들에는 북한 물건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북한 돈부터 우
표, 그리고 잡다한 상품들까지

우리의 80년대 관광지를 가득 채웠을 법한 물건들이 이곳에는 한가득이다.














분명 이곳을 즐기는 관광객들도 있고, 따스한 날씨를 즐기는 이곳 사람들도 많다. 기념품 상점들도 나름 저마다의 생업들로

분주한데, 어딘지 모르게 도시가
주는 느낌은 그다지 활기찬 것 같지 않다. 전형적인 '국경 마을' 의 느낌이랄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유일한 육로는 휴전선이라는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있는 우리나라는 국경이라는 것이 없다.

나는 지금껏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육로 국경을 꽤 많이 넘어본 경험이 있는데, 그런 경험을 토대로 어느 국경이던지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분위기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국경이라는 느낌이 주는 묘한 긴장감과 함께, '그저 지나쳐가는 공간' 이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국경 마을은 대부분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이다. 물론 국경
마을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국경은 다른 어느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잠시 지나치는 공간일 뿐이고,
이러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식은 국경 마을 토박이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게 만든다. 지리적으로 가장 변방에 위치한 탓에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가장 변방을 차지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것이다.














 




       






노랫 가사에서만 접하던 두만강. 정말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동안 흘린 사람들의 눈물이 이 강물에 섞여 흐르고 있을까.

두만강은 중국과 북한의 자연 국경으로서 지금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놀라웠던 것은

어릴때부터 막연히 듣던 두만강이란
이미지는 무언가 대단하고 장대한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그 물길이나 강폭이 크게 대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5월말 찾은 두만강가에서 가장 폭이 가까운 곳은 2미터가 조금 넘어 보이는 곳이었는데,

정말 마음만 먹으면 금새 건널 수 있을 것 같은 가까운 폭이었고
얕은 수심이었다.

이 정도라면, 꽝꽝 얼음이 얼어붙을 겨울에는 강을 건너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일듯 했다.

물론 목숨을 걸고 먹어야 겠지만...









 



















도문에서는 이제 어린아이들은 이름조차 잘 모를 김일성의 초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입장료 30원을 내면 국경이 보이는 전망대

에 올라갈 수 있다.
전망대의 꼭대기에 올라서면 저기 국경 너머로 북한 땅이 생생하게 보인다. 저기 하얀 건물에는
 
'21세기의 태양 김정일 장군만세' 등의 구호가 보이고,
조금 더 멀리 보이는 회색 건물에는 김일성의 초상이 걸려있다.



여담을 조금 덧붙이자면, 아직까지 이곳 도문에선 살아있는 김정일보단 죽은 김일성이 더 인지도가 있는 듯하다.
 
강변의 공원의 한 기념물에 마오쩌뚱과
김일성이 나란히 걸려있는 초상을 보며, 잠시나마 20세기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난 마오쩌뚱, 김일성을 잘 아는 세대가 아니다. 어느새
뉴스와 신문은 이 이름들을 잊은채 후진타오, 김정일의 이름만을

언급하고, 매일 접하는 뉴스속에서 나는 이것에 익숙해져 버렷다.
 
아마 시간이 더 흐르고,
나의 다음 세대가 생긴다면 그들은 또 다른 이름들을 접하며 자랄 것이다.



 

그리고, 30원의 입장료에는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중간 국경까지 갈 수 있는 권리도 포함되어 있다.

자연 국경인 두만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를 반으로 갈라 반은 중국, 나머지 반 부터는 북한땅이다.

우리는 중국 쪽 국경의 끝까지 가볼 수 있다.

물론 마음대로는 안되고, 중국 국경 수비대 군인의 경호를 받아야 한다.






여기가 중국과 북한의 국경..

저 선을 넘으면 북한땅이군.















바로 앞에 두고도 가보지 못하다니....

나와 L 군은 그저 눈앞에 펼쳐진 땅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북한땅을 바라보며 감상에 빠져 있는데

옆으로 중국 국경 수비대 군인이 걸어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조심하라우. 그림자 넘어왔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