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만난 세계에서 가장 큰 레닌 머리
러시아.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열차.
동해를 건너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이곳 울란우데까지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바이칼 호수다. 막연히 바이칼 호수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
에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바이칼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인 동시에 그 크기도 엄청나 이르쿠츠크, 울란우데 등 여러 도시
를 끼고 있다.
그런데, 이곳 울란우데에서 뜻밖에도 바이칼 호수 이외에 굉장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이칼 호수처럼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도 아니고, 앙코르와트
처럼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도 아니지만, 이 굉장한 것은 그 유명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큰 레닌 머리(두상) ’ 이라는 이름으로 1991년 기네스북에 등재가 되었다.
처음 이 거대한 레닌의 머리를 만나면 먼저 피식, 하고 자기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보통 흔히 이야기하
는 레닌의 동상이나 석상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레닌의 두상’ 이다.
그렇다. 그냥 이렇게 머리만 덩그라니 단상 위에 놓여있는 것이다. 소련이 붕괴된 후 구소련 곳곳에 존재하던 레닌의 형상들은 하나 둘 철거가 되었지만,
아직도 이렇게 남아있는 곳들도 있다. 마오쩌둥이 중국에서 하나의 상품이 되어 중국 자본주의를 선동하고 있듯이 21세기 러시아에서의 레닌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곳곳에 레닌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지만, 그것은 더 이상 영웅도, 사회주의의 전사의 모습도 아니다.
저 두상이 얼마나 크길래 기네스북에 등재된 것인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면 이 사진을 보면 어느 정도 크기에 대한 감이 잡힐 것이다. 사람들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꽤’ 큰 수준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머리만 덩그라니 남아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레닌은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금 무서운
느낌도 든다. 레닌의 두상이 있는 이곳은 현재 광장으로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의 휴식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어쨌거나 저 머리는 세계 1등이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레닌 두상이 왜 모스크바도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아닌 이 시베리아 변방 울란우데에 세워지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곳 울란우데는 러시아에서 행정구역 상 러시아의 자치 공화국 ‘부랴트 공화국’ 의 수도이다. 그리고 이 곳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인구는 푸른 눈의 슬
라브 민족이 아닌 몽골족의 후예인 부랴트 족이다.
<울란우데에서 만났던 부랴트 청년 베리. 그는 몽골족의 후예이다>
사진만 봐도 징키스칸의 후예임을 딱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생김새도 확연히 다르고, 언어조차 다른 이들을 통치하기 위한 구소련의
방법은 이데올로기였다. 사회주의였고, 레닌이었다. 생김새와 언어가 달라도 우리는 사회주의 안에서 , 레닌의 형제들이기 때문에 동질감을 느끼고
한 국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슬라브와 다르면 다를수록 더 큰 레닌의 형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 소련, 그 이후는 중국의 차례?
그러고 보니 그것은 비단 구소련만의 방법은 아니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도 위구르 인들의 비중이 가장 높은
카슈가르에는 중국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웅장한 마오쩌둥의 형상이 광장을 차지하고 있다.
위구르 족들은 한족들과 생김새가 판이하게 다르다. 그들은 투르크 계통, 아랍 계통에 가까운 겉모습과 그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 중국 역시 그들을 묶
을 수 있는 유일한 고리는 ‘마오쩌둥’ 이라 생각하였다. 소수민족이 많은 윈난성에도 이러한 법칙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바이족이라는 소수민족들이 대
다수인 따리에는 거대한 황금빛의 인민영웅의 기념상이 우뚝 서 있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카슈가르에 위치한 마오쩌둥의 형상>
<중국 윈난성 바이족 자치지역인 따리에 있는 인민영웅 기념형상>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의 레닌 머리가 만들어진 이유는 이러했다. 이것이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아시다시피 소련이 붕괴하게 된 결정적 원인 중
하나는 소수민족 정책이 실패한 것이었다. 아마도 레닌 머리는 후세의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이외의 역할을 못한 것 같다.
그렇다면 중국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중국 역시 소련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실제로 지금 티벳과 신장을 중심으로
소수민족의 통합에 문제가 생기고 있고, 이것이 현재 중국 정부의 가장 큰 골칫거리이기도 하다.
중국은 현재 이것을 ‘민족주의’ 라는 새로운 키워드로 풀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민족 일체론’ 을 중심으로 지난해 있었던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이 추구하
는 화합을 위한 큰 계기였다. 중국의 노력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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