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에 대한 모든 것/09'TheGreater Mekong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준비되는 화려한 죽음 .

 

 

 

 

 

위엔양(元陽).

이곳엔 하늬족의 계단식 논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위엔양은 도시 자체가 산 위에 세워져 있다. 마을은 산을 타고 층층이 이루어져 있는데, 도시의 꼭대

기부터 가장 낮은 곳에 이르기까지 길은 하나뿐이며, 경사진 언덕과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그 하나뿐인 계단 길의 높은 곳에 묵게 되었는데, 계단

식 논을 다 보고 여유가 생기자 하루는 이 마을을 걸어서 돌아다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무래도 높은 곳에서 시작을 하다 보니 더 위로는 볼거리가

더 있을 거 같지는 않다는 어렴풋한 느낌과, 또 올라가는 것보다는 내려가는 것이 훨씬 더 가벼운 발걸음이기에 필연적으로 아래로 향하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을의 아래에서, 정말 뜻밖의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계단 아래로 계속 내려가다 보니, 비슷한 느낌의 집들이 쭉 늘어서있었다. 왠지 모르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든다. 내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독특한 느

낌을 풍기는 인형이었다. 붉은 빛을 띤 얼굴과 그 눈코입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섬뜩하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다. 술병을

들고 있는 남자와 잔을 들고 있는 여자. 사람 인형 말고도 말이며 여러 동물들의 형상을 한 것과, 무엇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는 화려한 금은색으로 된

거대한 기둥이 실내공간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눈을 찌를듯한 강렬한 원색, 그리고 번쩍대는 금은색… 위엔양이 이렇게 화려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

었나… 계단식 논과 왁자지껄한 포장마차가 위엔양에 대해 내가 가진 이미지의 전부였는데, 위엔양의 새로운 모습을 뒤늦게 발견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이것들은 무엇일까? 그 동안의 여행경험과, 나름 문화와 사회를 공부하는 사회학도로서의 감을 가지고 추측해보자면 이것은 결혼식 아니면 장례

식과 관련된 물건들일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화려함이 쓰일만한 곳은 그 둘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이것이 어디에 쓰이는 물건이든지 간에 하늬족들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이런 독특한 모습의 인형들을 본 적은 없었으니까.

 

한참을 이 골목을 서성이다가, 그 중 분주해 보이는 한 집안으로 조심스레 들어서며 묻고 싶은 말을 건냈다.

 

“혹시, 이거 결혼식에 쓰이는 것들인가요?”

 

사실 내 심증은 결혼식보다는 장례식쪽이었다. 하지만 정작 결혼식에 쓰이는 물건이라면 장례식을 언급하는것은 크나큰 실례이기에, 그 반대로 물었다.

 

“아니요, 사람이 죽었을 때 장례의식에 쓰이는 것들입니다.”

 

선한 인상의 아저씨는 낯선 이방인인 나에게 편한 미소로 대답해주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하늬족들의 장례의식에 쓰이는 물건들인 것이다. 주인

아저씨의 배려 덕분에 나는 한참을 서서 그들의 작업을 지켜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은 사람들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종이를 자르고, 오려 붙이고 천에 실로 한땀한땀 화려한 수를 놓으며 그렇게 조금씩 그 누군가

의 화려한 죽음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저기 孝思堂 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중국어에서 효(孝) 라는 글자는 상(喪) 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이들의 준비로 위엔양의 누군가는 마지막으로 화려한 여행을 떠난다. 천상병 시인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잠시 동안의 여행이고 소풍이라 노래

했듯이, 아마 이곳 위엔양의 사람들에게도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이 길은 마지막으로 준비된 여행이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화려하게, 그 마지막을 보내

주려 이렇게 그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직접 손으로 만들어 나가는지도 모른다.

 

위엔양은 끝까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 작은 마을은 자연과, 문화와, 사람을 모두 갖추고 있는 보물과도 같은 곳이다. 윈난에 들어서며 쿤밍- 리장

– 따리를 거쳐 이곳 위엔양에 왔는데, 이젠 위엔양이 그 중 최고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이곳을 잊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