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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모든 것/이런 곳으로 여행

체스키 크룸로프 VS 리장고성 , 전격비교.

 

 

 

 

체스키 크룸로프 (Cesky Krumlov) 를 알고 있는가? 

체스키 크룸로프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4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아는 사람만 아는 숨겨진

여행지였지만, 이젠 프라하만큼이나 유명한, 동유럽의 필수 코스 중 한곳이 되어버린 곳이다. 비록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아직도

동화 같은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리장 (丽江) 을 알고 있는가?

중국 윈난성의 북쪽, 해발고도 2400m 에 위치한 오래된 마을이다. 이곳 역시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그저 윈난의 오지 산골 마을에 불과했다. 하지만

1996년의 대지진을 견뎌내면서 급속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지금은 중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지 중 한곳이 되었다. 이곳 역시 찾는 사람들은

많아졌지만, 이곳에서 오랫동안 터전을 잡고 살아온 소수민족인 나시족들은 자신들의 이전 모습을 간직한 채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동유럽의 한 쪽 구석의 작은 마을 체스키, 그리고 중국 서남부 윈난의 작은 마을 리장. 아무리 봐도 공통점이 없을 것 같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다.

하지만 리장의 구시가지에 도착하자마자 떠올린 것은 바로 체코의 그곳, 체스키 크룸로프(이하 체스키) 다.

다르지만 닮았다, 고 하는 역설적인 느낌이 머리를 때렸다 …….

 

 

 

 

      

       

- 체스키 크룸로프(좌) 와 리장고성(우) 의 자갈길 모습 -

 

 

두 곳에서 가장 먼저 비교가 되는 것은 구시가의 작은 규모와 함께 구시가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는 자갈길이다. 체스키와 리장의 구시가지는

모두 이런 보행자 위주의 자갈길로 되어있다. 리장고성은 아예 자동차 진입이 불가하며, 체스키의 구시가지는 자동차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역시나

모든것이 보행자 위주로 되어있다.

하지만 이 둘은 닮았지만 너무나 다르다. 자갈길의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것이 닮았지만 너무나 다르다. 동화 속에 나올듯한 빨간 지붕과 파스텔 풍의

페인트가 칠해진 네모난 집들이 서 있는 체스키. 그리고 붉은 색을 칠한 목조건물에 연약한듯 힘있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기와가 올려진

리장 고성의 건물들. 지금 이 글 속에서 만큼은 각자가 서양과 동양의 ‘대표’ 선수, 아니 지역이다.

 

 

 

      

- 체스키 크룸로프(좌) 와 리장고성(우) 의 지붕 모습 -

 


빨간 지붕은 체스키의 상징과도 같다. 체스키를 아기자기한 동화 속의 마을로 만들어주는 가장 큰 요소는 뭐니뭐니해도 빨간 지붕이다.

반면 리장의 지붕은 기품을 지니고 있다. 체스키가 장난기 가득한 소녀의 모습이라면 리장은 수염을 길게 기른 현자의 모습이다.

낡았지만 전혀 기품을 잃지 않은 , 세월이 남긴 지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체스키도 의외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3세기 남 보헤미아의 비테크 가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고딕 양식의 성을 짓기 시작한 것이 체스키 크

룸로프의 시작이다. 이후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건물들이 일부 추가 되었으나 18세기 이후에 지어진 건물은 거의 없다. 리장의 발전이 명청대에 급속

하게 이루어져 일반적으로 리장의 자갈길을 두고 600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일컫는다 했을 때, 체스키 역시 이에 견주어도 뒤질 것이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다.

 

 

                                                

 

- 체스키 크룸로프(좌) 와 리장고성(우) 의 골목 모습 -

 

 

체스키와 리장의 구시가지를 거미줄처럼 연결하고 있는 것은 좁은 골목이다. 골목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구시가지 자체가 둘 다 크지 않기 때문에

두발로 걸어다니다 길을 잃는 것은 오히려 걱정이 아닌 이 두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굳이 이곳들에서는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보고

어느 음식점에 가서 무엇을 먹을지 가이드북에 사로 잡혀 움직일 필요가 없다. 골목 하나하나가 볼거리이고, 방향을 잃고 정처없이 헤메이다 우연히

숨겨진 맛집을 찾아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두 곳이기 때문이다. 마음 놓고 이 오래된 자갈길을 밟으며 시간을 거스르는 여행을 하자.

 

 

 

      

- 체스키 크룸로프(좌) 와 리장고성(우) 의 간판 모습 -

 

 

여기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 하나는, 체스키의 구시가지와 리장고성 내의 구시가지는 모두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놀랍다. 아무리 문화의 보편성이라는 것이 있다지만, 동유럽과 중국의 윈난의 역사와 지리상의 거리를 고

려하였을 때 특수성이 보편성보다 훨씬 더 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둘은 이렇게도 닮아 있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이야기는 바꾸어 말하면 그 곳만의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와 전통에 걸맞게 두 곳 모두

자신들의 도시 경관에 가장 어울리는 간판들을 가지고 있었다. 체스키의 한 호텔 입구앞에는 코카 콜라의 마크가 새겨져 있었는데, 전세계 누구나가

떠올리는 붉은색 배경에 흰색 글씨가 아닌, 체스키에 가장 잘 어울리는 흰색 배경과 금색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리장 역시 마찬가지인데, 중국 전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은행이나 이동통신사의 간판들이 모두 리장과 가장 잘 어울리는 나무로 되어 있다. 위에 보이

는 농업은행의 간판은 원래는 흰색인데, 리장고성 내에서는 고성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이런 나무로 되어있고, 기와가 올려져 있다.

 

 

 

 

      

 - 체스키 크룸로프(좌) 와 리장고성(우) 의 구시가지 모습 -



 

      

 - 체스키 크룸로프(좌) 와 리장고성(우) 의 광장 -

 

 

빨간색 지붕과 기와의 차이 뿐이었던 것일까. 사실은 처음부터 금발의 백인이든 검은 머리의 황인종이든 다른 점보다는 같은 점이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편리하기 때문인지, 인간들은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을 찾아내 우리와 우리가 아닌 타자(他者) 를 구분하기를 더 좋아했다.

나는 세계 여러 곳을 여행 하면서 한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다름에 대한 인정’ 이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역설적으로 그것들이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나와는 ‘다른 것’  들이 친숙해지고 나면 ‘같은 것’ 들도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차이점은 찾아내기 쉽지만 같은 점을 발견하는 것은

전자보다는 약간은 더 어렵다. 이 깨달음 덕분에 전혀 비슷한 것 같지 않은 수역만리 떨어진 두 곳의 차이점과 함께 공통점까지 논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 체스키 크룸로프(좌) 와 리장고성(우) 을 굽이쳐 흐르는 운하-

 


계속해서 두 곳을 살펴보자. 두 도시에는 모두 젖줄과 같은 운하가 흐른다.

오래된 성벽과 오래된 자갈길 그 옆에서 친구처럼 함께 오랜 기억을 공유하며 흘러왔다.

운하는 도시의 고풍스러움과 운치를 더해주는 동시에 도시를 유지하는 생명줄 이기도 하다. 운하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떼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여행이 아니라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특히나 혼자서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체스키와 리장 모두 혼자보다는 연인과 함께 하면 더욱 멋진 곳이 아닐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꿈이 아닌 현실임을 서로에게 일깨워 줄 수

있는 연인이 함께 있다면 더욱 이곳이 즐거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체스키 크룸로프(좌) 와 리장고성(우) , 물가의 사람들-

 

 

 

체스키와 리장에서는 한가하게 물가를 노닐 수 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잠시나마 머물게 되었다면, 진절머리 나는 세상의 걱정들은 잠시 잊는 것이 예의다.

리장에서도, 체스키에서도 시간은 흐르지만 경쟁에 찌든 대도시보다는 그 속도가 느리다. 무엇을 볼까, 무엇을 먹을까 모든 고민을 버리고

그저 이곳 자체에 몸을 맞기고 이곳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 이곳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두 곳을 즐기는 방법은 놀랍게도 전혀 다르지 않다.

 

 

 

      

 - 체스키 크룸로프(좌) 와 리장고성(우) 에서 만났던 인형들-

 

 

 

지금쯤 이 글과 사진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체스키와 리장은 닮은 것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체스키의 인형들이 체코의 전통에 따라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면, 리장의 인형들은 가지런히 서서 리장의 소수민족 복장을 입고 있었다.

서양적인 아름다움? 동양적인 미?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서로는 각자의 특색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 에필로그

 

 

 


사실 제목은 체스키 크룸로프 VS 리장고성 이지만, 결코 이 둘은 맞설 수도 없고, 우열을 가릴 수도 없다.

닮았지만 너무나 다르고, 비슷한 듯하지만 각자 특색이 뚜렷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닮은 듯 다른 매력은 시공간을 뛰어넘었다.

누군가는 체스키의 빨간 지붕이 더 좋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리장의 고풍스러운 기와에 매력을 느낄지도 모른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아무래도

우리들과 같은 동양인들은 체스키의 빨간 지붕에, 서양인들은 리장의 오래된 기와에 더욱 큰 매력을 느낄 확률이 높다. 한국에는 체스키의 명성이 리장보

다는 훨씬 높으며, 체스키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리장은 다른 일반적인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르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동양적인 미가 극대화되어서 오히려 더욱 이국적으로 다가오는 역설이

랄까. 중국이나 일본의 다른 여행지에서 기와와 역사적인 유적들로 둘러 쌓인 곳들을 접해 본 적이 있지만, 대부분은 그 규모가 작거나, 너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관광지’ 의 느낌이 강했다. 리장도 이전보단 관광지의 냄새가 심해지긴 했지만, 아직 이처럼 작은 구시가지 - 도시-  전체가 동양의 미로 가

득찬 곳은 리장 이외에는 없다. 분명 리장에서는 다른 동양에서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 특별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분명 두 곳 모두 말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부족한 큰 매력을 지닌 곳들이다. 어느 곳에 승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는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혹시나 도저히 결정할 수 없다, 고 하시는 분은 지금 당장 떠나서 몸소 비교 체험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