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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모든 것/China Story

조선족. 우리들이 그어놓은 보이지 않는 경계위의 그들을 만나다.

    여행의 경험이 쌓이고 다녀본 여행지가 하나둘씩 늘어나자, 이제 어느 정도 그들 사이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단오절(중국의 명절로 휴일이었다) 때 우리가 흔히 잃어버린 옛 땅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간도 지역 - 지금의 중국 동북 지린성 일대를 중심으로 여행을 하면서 고구려의 옛 땅과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의 생활을 목도하게 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 백두산 마을 이도백하에서 연길로 가는버스. 한글이 선명하게 적혀있다.

ⓒ2009 By 손요한

    중국에는 행정구역상 23개의 성과 5개의 자치구, 4개 직할시와 2개의 특별 행정구역으로 되어있다. 5개의 자치구는 시장 티벳 자치구,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몽고자치구, 영화회족자치구, 광서 장족 자치구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중 어느 정도 수적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하면서 한족과는 다른 자신들만의 전통과 문화적 색채가 강한 민족들이 자치구를 형성해 생활하고 있다.

    소수민족의 행정구역상에서 자치구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하위 행정 구역 개념으로 ‘자치주’ 가 존재하는데, 우리가 연변이라 알고 있는 그곳의 정식 명칭이 바로 ‘연변 조선족 자치구’ 이다. 연변 조선족 자치구는 연길[延吉]·도문[圖們]·둔화[敦化]·화룡[和龍]·용정[龍井]·훈춘[琿春]의 6개시와 왕청[汪淸]·안도[安圖] 2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연변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고, 일반적으로는 인구 30만을 넘는 연변의 주도 연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연변의 전체 인구는 200만을 조금 넘는다.

 

    조선족. 이 단어를 들으면 가깝게 느껴지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솔직한 이야기로 나는 이 단어가 너무나 낯설어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서울에서 생활을 하며 음식점에서 밥을 먹을때, 특히나 ‘김밥 천국’ 과 같은 곳에서 밥을 먹을 때면, 주문을 받는 분이나 주방에서 소리치는 아주머니들의 말투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러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조선족이구나......

    분명 우리말이다. 우리는 그들의 말 99% 이상을 듣고 바로 이해한다. 그리고 억양이 서울말과 다른 것은, 경상도나 전라도의 사투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조선족의 억양이 섞인 말을 들었을 때 느껴지는 설명하기 힘든 어색한 감정은 분명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를 들었을 때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국에서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우리와는 ‘다른’ 이방인이다.

    그리고, 이번에 중국의 동북지방을 여행하면서 그들을 조금 더 가까이가 보고 접해볼 기회가 생겼다. 베이징에서 통화(通化), 지안(集安), 그리고 백두산을 거쳐 연길에 이르렀을 때, 생각보다 발전된 도시와 거리의 수많은 간판과 도로 표지판에 중국의 한자 뿐 아니라 한글이 함께 적혀 있는 광경을 보고 어리둥절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베이징에서 3개월 째 유학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중국의 문화와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보는 한글 간판의 물결이 조금은 낯설었다.

 

▲ 연길의 도로 표지판의 모습.

ⓒ2009 By 손요한

 

▲ 연길의 버스노선도. 신화서점이 중심가이다.

ⓒ2009 By 손요한

 

▲ 연길의 재래시장인 서시장. 한국 재래시장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9 By 손요한

 

▲ 반가운 간판도 눈에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무언가 다르다는 사실. 연길1호점이라는 글씨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2009 By 손요한

 

▲ 세계 어느곳의 KFC가 3개 국어로 간판을 표시해 놓았을까. 한국어, 중국어, 영어가 혼재된

   연길의 KFC 간판은 너무나 새롭고 신기하다.

ⓒ2009 By 손요한

 

 

    인구의 40%가 조선족이라는 연길시에서 조선족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버스를 타도, 길을 걷다가도, 음식점에서 밥을 먹다가도 여기저기서 반가운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한국이 아닌, 서울이 아닌 중국의 연길에서 60%의 한족과 40%의 조선족 사이에 남겨진 나는 이방인이 분명했지만, 어쩔 수 없이 조선족이라 불리는 그들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커져만 갔다. 분명한 것은, 나는 한족보다는 조선족 사람들과 더욱 닮았고, 말도 통하고, 인식도 어느 정도 공유가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연변 자치주를 상징하는 주화(州花) 는 진달래다. 다른 설명이 없어도, 우리에게는 진달래라는 말만 들어도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분명 한족과는 다르다. 나는 이전부터 한국, 중국, 일본인의 생김새를 한눈에 파악 할 수 있는 능력을 자랑처럼 말하고 다녔는데, 실제로 열에 아홉은 맞히는 편이다. 연변의 1개현과 4개의 시를 여행하면서 나에게 누가 한족이고 누가 조선족인지 겉모습만으로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은 나도 모르는 사이 한족=중국인, 조선족=한국인 이라는 잣대로 사람들의 겉모습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젊은 조선족들이 중국화가 많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베이징에서 수백 수천킬로 떨어진 작은 도시 연길의 젊은이들의 옷차림이 베이징의 젊은이들보다 세련되었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곳의 조선족 젊은이들이 한국의 매체를 매일 접하고, 한국의 유행을 따르기 때문이다. 정말, 연길 얘들이 옷도 더 잘 입고 세련되었다. 체육복을 입고 삼선 슬리퍼를 끄는 중학생들의 모습은 정말 한국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또 내가 타고 있던 낡은 시골 버스에 올라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모습이 우리들 농촌에 계시는 그분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고난 뒤로는 왠지 모르게 가슴이 얼얼해졌다.

 

▲ 연길에서 콘서트를 갖는다는 한국 가수 V.O.S 의 포스터가 연길 곳곳에 붙어있다.  

ⓒ2009 By 손요한

 

▲ 연변 자치주에 속해있는 용정시의 소학교(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지나는 아이들의 모습

ⓒ2009 By 손요한

 

▲ 문방구 앞 포스터의 주인공은 빅뱅이었다. 베이징에는 아직 중국에 법인을 둔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동방신기, 슈퍼쥬니어 정도가 어느정도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을 뿐이다. 베이징에서

   보기 힘들던 빅뱅의 모습을 오히려 베이징에서 천킬로미터가 넘게 떨어진 이곳 조그마한 도시

   용정에서 만날 수 있었다.

ⓒ2009 By 손요한

 

 

 

▲ 연변 자치주에 속해 있는 용정시의 한 소학교와 부속유치원의 모습.

ⓒ2009 By 손요한

 

▲ 학교앞에 문방구와 분식집이 있는 것도 우리와 유사하다.

ⓒ2009 By 손요한

 

 

    정말 아이러니하다. 한국에서 이들은 나에게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는데, 내가 이곳에 이방인으로 오고 나니 이제야 이방인이 된다는 것의 느낌을 알 것 같다. 더구나 자신은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방인으로 여기고 대한다면 그보다 아픈 일도 없을 것이다.

    조선족이 중국인이다, 한국인이다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목적 하에 이들을 재한국화 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 속해있는 국민국가의 이름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그냥 서로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다면 이 또한 마음이 편한 일만은 아닌듯하다. 그냥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서로가 이방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서로 편견을 가지고 경계하고 헐뜯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경계인으로서의 조선족, 그들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