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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모든 것/오늘의 斷想

[보충역 기초군사훈련] 3생활관 이야기.






생활관 이야기'에 앞서...

막상 훈련소에서 겪었던 생활관 이야기를 쓰려하니 
크게 걱정되는 것이 한가지 있다...이야기를 시작하기가 참 어렵지만 조심스레 꺼내본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남자들은 누구나 병역의 의무를 가지게 된다.
그 중 현역으로 2년가까이 되는 시간을 군대에서 보내는 사람. 심신의 건강때문에 본의 아니게 보충역(일명 공익)을 받아 사회공공기관으로 출퇴근 하며 보내는 사람, 또 심신의 건강 문제로 면제를 받는 사람들...상근도 있고, 의무소방도 있고.. 다양한 형태로 모두가 병역의 의무를 행하게 된다.

난 그중 보충역의 의무를 가지게 됐다. 그래서 한달채 안되는 기간동안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나오게 됐다...
여기 쓰려는 글은 그 한달동안 경험한 '생활관'이야기이다. 단지 그 한달의 기억과 기록을 일기 형식으로 써볼까한다.

 한달 밖에 안 있었으면서 이런 글을 올린다고 비난 받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 기분이 언짢다면 너그러운 이해를 구한다. 나의 친구나 선배, 그리고 동생들 중 현역으로 병역을 행하고 있거나 마친 이들이 많다. 한달간의 경험으로 감히 그들의 노고와 고충, 마음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면 다행이겠다.


50사단 보충역 05기 '3생활관 이야기'.

공익은 가입소 기간이 없다. 첫주부터 그냥 정신없이 불려다닌다. 하지만 다행인 점이 바로 생활관 사람들이 모두 좋아서 형,동생, 친구들로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26일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훈련 기간이었지만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됐었고 또 웃으면서 지낼 수 있었다. 훈련소에서 가장 기뻤던 일을 꼽으라면 사람들을 만났던 일이고, 가장 아쉬운 일은 그들과 헤어져야 할 때 였던것 같다. (물론 훈련소는 벗어나고 싶었지만 ㅋ)

8/14 일 비상문 간판이 절실한 순간



 가장 먼저 생활관의 맏형 노릇을 톡톡히 해내주신 경채형.

중대장 훈련병으로 바쁘셔서 식사지원, 청소지원을 함께 하지 못한 점이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항상 동생들 챙겨주시고 "쓰레빠~"정리를 외치시던 모습, 또 파란만장한 인생이야기로 서먹서먹했던 생활관에 말문을 틔워주셨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입구 쪽 문옆 벽에 기대 항상 마스크 쓰고 쉬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 생활관 선임으로 이것저것 많은 일과 저녁마다 점호를 외쳐주신 창호형.
싫은소리 한번 안하시고 동생들하고 이야기도 잘 해주셨다. 풀뽑을 때면 항상 형과 이야기하곤 했는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다.

대섭이 형과 광열이 형! 축구로 단련된 체력으로 내가 옆에서 운동한답시고 깔쭉댈때마다 기를 팍팍 눌러주셨다. 조용조용하시고 근엄하게 계시다가 개그 한방씩 터뜨려 주시는 대섭이형. 그리고 내 옆자리에서, 또 불침번 파트너로 동고동락해주신 듬직한 광열이형. 그리고 두 분을 떼놓고 언급할 수 없다ㅋ.

훈련소에서 고등학교 선배님을 만나다니. 성민이형 덕분에 고등학교 추억을 두고 재밌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생활관 서무계로 모두가 기다리는 '편지'를 배달하는 중요한 임무도 수행하셨다. 성민이 형만 불려가면 모두들 내심 기대하고 있었으리라...누구한테 편지 올까 하고....
 우리 생활관 마스코트. 항상 생글생글~ 마지막 종교행사에서 맹활약, 초코파이 한박스를 선물해준 대호. 항상 느릿느릿, 종교행사땐 빠릇빠릇~ 마지막 반전을 기대했지만 역시나 웃으면서 느긋했던. 대호가 우리 생활관이 아니었다면 너무 심심하지 않았을까?

 아마 우리 생활관에서 가장 행정관을 많이 갔을 병기계, 용운이. 맨날 불려다닌다고 힘들었을텐데 한번도 우리에겐 불평하지 않았다. 처음에 머리를 삭발하고 등장해서 깜짝 놀랐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침에 혼자서 바리깡으로 밀고 왔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보급을 담당했던 보급계 기석씨. 키가 커서 마지막에 총기 정리까지 한다고 고생했는데..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다. 자리가 멀어서 좀더 많은 이야기 나누지 못한게 아쉽지만 원거리 사격장에서 풀뽑으면서 처음 인사할 수 있었던 기억도 난다. '까쓰'때문에 꽤 힘든 자리 였을 텐데 나중엔 무감각해 보였다ㅋㅋㅋ.

 아마 우리 생활관에 지홍씨가 없었다면 그야말로 정적으로 훈련을 마쳤을 것이다. 항상 분위기 메이커로 큰 웃음을 주었던 기억에 또 웃음이 나려한다ㅋ. 목소리 크다고 형들한테 조심소리 듣느라 힘들었을텐데 좋은 분위기 만들어 가느라 정말 큰 역할을 해냈다. 저녁에 불침서면서 들었던 잠꼬대도 잊을 수가 없다..ㅋㅋㅋ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내 건너편에서 대호를 도와주던 현석이, 제욱이.
 제욱이는 청소시간마다 창문닦느라 고생하는데 한번 도와주지 못하고 훈련이 끝나버렸다. (기회는 있었지만...미안ㅋ) 팔자걸음 고치라고 역정냈던게 미안하다.그게 또 제욱이의 매력포인트였는데 내가 늦게 알아챘다. 불침이라 깨울때 쉽게 일어나주고 대호를 도와주는 뒷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석이도 대호를 잘 챙겨주면서 말없이 할 일 다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 일주일 정도 말을 안하길래 건드리면 안되겠구나 생각했었는데 나중엔 못하는 말이 없었다ㅋㅋ. 이나영 사진은 이제 버렸으려나... ㅋ. 그림 그릴때 마다 옆에서 해주던 이야기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귀여운 금채. 처음에 현석이 처럼 아무 말도 없어서 꽤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처음 말트던 기억이 난다. 수류탄 교장이었나. 말하는 거 안좋아하냐니까 "저 말하는거 좋아해요!"하면서 환하게 웃던 장면이 생생하다. 그뒤로 어찌나 저질 개그를 해대던지...ㅋ. 은근히 고집센 금채. 좋은데 배정됐다고 문자오더니 살만하구나?ㅎ

 마지막으로 선호씨. 4주차에 이사오긴 하셨지만 내 옆자리라 쉽게 얘길 나눌수 있었다. 처음 안동 이야기를 나눌때 기억이 난다. 안동 소주를 '아래기'소주라 한다는 사실도 이때 알게 됐다. 같이 처음부터 훈련받았으면 더 많은 얘길 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낙서 한다고 깝죽 댔는데 생활관 사람들 얼굴하나 그려주지 못해 많이 아쉽다.
모두 기억하기 싫다고 하는 훈련소 생활을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준 50사단 1중대 1소대 3생활관사람들에게 이 글로 고마움을 전한다. 
꼭 다시 만나고 싶다.^^
모두 사회에서 복무 잘 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