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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모든 것/사회, 문화

간도 되찾기의 허상을 말한다.

 




얼마전부터 인터넷을 하다 보면 이런 댓글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2009년 9월 4일로 간도협약 100년이 지나 국제법상 공소시효를 넘기게 되어 간도는 영원히 중국 땅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간도를 되찾아야 합니다.”

 

확실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충 위와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 전 미녀들의 수다의 베라에 관한 사건에서 잘 볼 수 있었듯이, 간도에 관한 이슈는 우리 국민들의 민족주의 정서에 불을 당기기에 더할나

위 없이 좋은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간도 되찾기 움직임이 웹 상을 통해 시작되어 아마 다른 매스컴들에서도 종종 다룬 듯 하고, 급기야 국

회 의원 50명이 간도 찾기 운동에 나섰다는 뉴스까지 접할 수 있었다. 네이버 같은 포탈페이지 간도 되찾기 캠페인을 메인에 올려놓는 등의 움

직임이 나타났다. 비록 필자는 지금 베이징에서 공부중이기에 한국의 분위기가 어떤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오랜만에 여야 없이, 그리고 국

민들도 최소한의 힘을 모을 수 있는 프로젝트가 구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 움직임을 보면서 간도가 과연 우리땅인가?  하는 것에는 아직도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땅이라고 할 때, ‘우리’ 에 대한 정의가 아주 애매하다. 무엇이, 어디까지가 ‘우리’ 인 것인가?

중고등학교 국사시간에 모두가 배웠듯이, 고구려와 발해, 특히 발해는 지배층인 소수의 고구려 유민과 피지배층인 다수의 말갈(여진) 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나라였다. 발해가 우리의 역사임을 생각해 볼 때, 그렇다면 발해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말갈족은 우리 민족인가, 아닌가?  발해

시대의 말갈족은 우리 민족이고, 그 이후는 우리 민족이 아닌 남의 민족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지금의 시각틀로 과거를 바라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과거의 입장으로,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갔다고 가

정해보자. 나는 나는 지금 발해 시대의 옛 간도땅에 왔다. 이 시기에 과연 국경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존재하였을까?

분명 국가는 존재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국민 국가의 개념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아는 국가의 개념으로 그것과는

다른 성질의 국가를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꾸만 오류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분명 국가는 존재하였지만, 특히나 국경이나 변방에서는 이 구분이 지금처럼 완벽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냥

그 국경 근처에서 조상대대로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왔기에 그 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것인데, 그 곳에는 고구려인

들도, 말갈인들도 그냥 그 곳에 ‘사는 사람’ 일 뿐이다. 고구려계와 말갈계의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명확한 구분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분명 국경은 있었겠지만 그 시대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의 뒷면’ 도 분명 있을 것이다. 국가가 저 시골의 국경 마을, 국경

개념 없이 그냥 혼재된 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까지 모두 관리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간도는 그런 땅이다. 분명 간도는 애초부터 우리 땅은 아니었다. 그냥 그곳에 사람이 있기 전에 땅이 먼저 존재하였고, 국민 국가의 개념이 생

겨나기 이전에 그곳에 사람이 먼저 존재하였다. 그곳에는 그 어느 국가에 속하지도 않은 그냥 그곳에 사는 간도사람이 있었고, 조선 후기에

많은 사람들이 간도로 넘어가 ‘간도사람’ 이 되었다. 아마도 그들은 간도에 살지만 여전히 조선 사람이었을 것이고, 그들에게 함경도에 살든 간

도에 살든 그것은 큰 의미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척박한 땅과 기근에 이길 수 있는 새로운 땅을 찾아 ‘근처’ 의 미개척지로 온 것이다. 이들은

공부를 한 양반도 아니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도 아니다. 글 한자 배우지 못한 조선 북쪽의 변방에 사는 가난한 농민일 뿐이다.

 

그런 간도가 시간이 지나 일본땅이 되고, 중국 땅이 되었다.

그리고 100년이 흘렀다.

우리는 지금 간도 땅을 되찾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지금 간도에 살고 있는 ‘간도사람’ 들은 이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지난 봄, 중국의 동북지역, 지금의 간도의 주요 지방을 모두 여행하였다. 중요한 것은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간도 사람들 - 조선족이라는 이름

으로 불리는-  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젊은 2세대, 3세대의 경우는 대부분이 그러하고,

다른 의식을 가진 늙은 세대들은 점차 흙으로 돌아가시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인식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일반 한족과도 다르다. 비록 중국인이긴 하지만 그들은 조선족이고, 간도 사람이다. 중국의 교육을 받지만 자신들의

고유의 문화와 가치에 관한 교육도 받으며, 중국어도 사용하지만 우리말도 여전히 사용한다. ( 젊은 세대들끼리 있을 때에 자신들끼리 중국말

을 더 자주 사용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간도를 되찾자’ 라는 것은 사실 약간은 생뚱 맞은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해방 이후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핑계로 그들을 돌보지 않았고, 대신 중국 정부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리고 이제 100년이 되어 우리는 뻐꾸기처럼 화려하게 컴백했다. 간도

사람들은 모르는 간도 되찾기가 한국에서만 진행되고 있다니, 뭔가 좀 웃긴 일이 아닌가?  그들은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고, 우리가 간도를

‘되찾아 줄’  필요성은 분명 느끼고 있지 못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번에 우리가 간도를 되찾는 것은 일본이 독도를 가지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옛 역사에 기대기에는

이미 시간이 많이 흘렀으며, 무엇보다도 지금은 그 구분이 눈에 너무나 명확히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도 되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눈에 보이기 위한 최소한의 명분을 위한 것이 그 첫째다. 

일본의 국회의원들을 보면서도 항상 가졌던 의문인데, 저 인간들은 독도가 자기 땅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왜 할까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

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그 사람들이 국회 의원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도 속으론 생각할지도 모른다.

 

“ㅆㅂ 이거 독도 한국꺼맞는데, 그래도 내가 국회의원인데 한국꺼라고 하면 일본 국민들이 화내고 다음에 나 안 뽑아줄 테고,

아놔 ㅆㅂ 이거 분명 한국꺼 맞고 우리꺼 안될 것도 아는데, 그냥 우리꺼라고 해야 사람들이 좋아할테니깐……끼룩끼룩”

 

지금 간도 문제를 둘러싼 우리나라의 국회 의원들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이거 해봤자 어렵다, 라는것을. 그런데도 하는 것은 국민들의 눈이 있

기 때문이고, 우리국민들이 민족주의에 쉽게 불 붙는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이를 정치적으로 잘 이용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결과를 떠나  민족주의에 쉽게 불붙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번 간도문제는 소위 ‘잘 먹히는’ 이슈이다.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어떻게든 이용하고 싶은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처음에 언급했던 그런 유포용 댓

글에서 사용되고 있는 ‘100년’ 의 공소시효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사실 국제법상으로의 100년 시효설은 그야말로 그럴듯한

허구에 불과 하다. 국제법상 이런 일반원칙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즉 100년에서 1초 지나면 땡, 식의 초등학생 같은 원칙은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번 간도 되찾기는 이런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허상적 움직임일 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