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에 대한 모든 것/이런 곳으로 여행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역설 , 루마니아의 즐거운 묘지.

 

 

# Prologue.

 

여행은 무언가 특별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행은 때때로 아주 사소한 이유로 시작되기도 한다.

 

.

………

……………

 

 

 

#1. 우연한 시작

 

 

< ‘좋은 생각’ 의 어느 한 부분 中 에서 >

 

 

 

우연이었다.

 

집에서 할일 없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시간을 죽이다 문득 소파 옆에서 작은 책자를 한 권 발견했다.

몇 년도 몇월호인지 조차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그것은 <좋은 생각> 이었다. 여러가지 좋은 이야기들이 들어있는,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책자다.

정독을 하려 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우연히 책장을 넘기다 눈에 띄는 한 페이지를 발견했다.

루마니아 북서쪽 끝에 있는 서푼짜 마을, 그리고 ‘즐거운 묘지’ 라….

그러고 보니 이번 여름 계획하고 있는 지중해 여행에 루마니아도 포함되어 있다.

가는 김에, 이곳을 들려봐도 나쁠 것 같지 않다.

이런 생각을 가진 순간, 이미 머릿속에서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루마니아의 북서쪽 끝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의 작은 마을 서푼짜 마을, 즐거운 묘지로의 여행의 시작이다.

 

.

……

…………

 

 

 

 

#2. 서푼짜 마을, 그리고 ‘즐거운 묘지(Cimitirul Vessel)‘



 

 

 

 

 

 

브라쇼브에서 기차를 세번이나 갈아타고 우여곡절 끝에 서푼짜 마을에 도착했지만, 나는 눈앞에 두고서도 즐거운 묘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한국에서부터 소중히 가져온 <좋은 생각> 을 다시 한번 펼쳐보고서야 내 앞에 있는 교회 안의 이곳이 ‘즐거운 묘지’ 임을 깨달았다.
 
알록달록 즐거워 보이기만 하는 저것들이 묘비다.

나 말고도 아직 잘 모르겠다, 하는 사람들은 위의 <좋은 생각> 을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루마니아 정교회는 루마니아의 국교로 전 국민의 80% 정도가 믿고 있다. 즐거운 묘지는 교회 안의 묘지였다.

 

 

 

 

이 곳 즐거운 묘지에는 생전 미장이 일을 하던 아저씨도,

아이들을 가르치던 선생님도 잠들어 있다.

누구는 생전에 푸줏간 주인이었고,

어떤 아주머니는 생전에 요리를 참 잘했었다.

 

 

 

 

 

이 분은 생전에 말을 참 사랑했었나 보다….

 

 

 

 

 

 

 

구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루마니아.

서푼짜 마을의 즐거운 묘지에는 생전에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간부를 지냈던 아저씨도,

식탁 머리맡에 그리스도의 얼굴을 걸어놓은 열렬한 정교회 신자였던 아저씨도 함께 묻혀있다.

 

 

 

 

 

 

어쩌면 서푼짜 마을에서 칼라 티비를 가장 먼저 보았을 전파상 아저씨는 2005년에 이곳에 묻혔다.

살아서 그렇게 동물을 사랑하던 수의사 아저씨는 묘비에서도 사랑하던 소와 함께 서 있게 되었다.

 

 

 

 

늠름한 군인이었던 청년도 이곳에 잠들었고,

 

 

 

자동차인지 트랙터인지 모를 무언가를 운전하던 아저씨도,

마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장 인상 깊었던 모습 그대로 묘비 속으로 들어갔다.

 

 

 

이 마을에서 생전 그렇게 우애 좋던 세 자매는 죽어서도 함께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곳에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만 묻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웠던 3살 소녀는 불의의 사고로 꽃다운 생을 이곳에 묻어야만 했고,

 

 

 

 

 

선량했던 양치기는 그만 강도를 만나 그 목이 달아나는 불행 속에

이곳에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이처럼 이곳은 원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보내야만 했던 사람들의 슬픔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그렇지만 왼쪽 묘비에 보이는 STAN 이라는 사람이 우연히 묘비에 색을 칠하게 된 이후,

이곳은 그 슬픔을 웃음과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즐거운 묘지’ 가 되었다.

 

 

.

……

 

 

#3. 즐겁습니다.

 

 

 

이 곳 즐거운 묘지에는 지금도 계속해서 서푼짜 사람들이 묻히고 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곳 사람들은 죽음의 슬픔을 해학으로 ‘즐겁게’ 풀어내고 있다.

 

 

 

 

 

이 곳 서푼짜의 기억은 살아있는 것이다.

저 묘비 위의 그림은 동화 속의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옆에 보이는 것처럼 지금도 이곳의 일상 그 자체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즐거운 묘지를 바라보며

어떠한 슬픔 앞에서도 이들처럼 의연하게,

그리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가 알았을까. 묘지에서 이러한 즐거움을 발견할 줄을..

누구보다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역설, 즐거운 묘지.

나는 그곳에서 누구보다 즐겁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