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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대한 모든 것/서울 vs 베이징

기대만큼 큰 실망, 광화문에 광장이 없다.


 

-서울의 광장-




여의도, 청계천, 시청.

이 세 단어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한가지 찾자면 그것은 바로 '광장' 이다.

그중에서도 서울의 ‘광장’ 을 거론했을 때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은 바로  ‘광화문’ 이다.




< 출처 : '광화문 광장' - 구글 검색>



광화문 앞에서 시작해 세종로 사거리를 지나 청계 광장까지 이어진 공간을

내 두 눈으로 처음 본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길거리 응원 때였다.

그리고 2006년 독일 월드컵의 길거리 응원,

2008년의 촛불시위까지 사람들의 뇌리에 남겨진 중요한 시점마다 이 공간은 그 중심에 있었다.






< 출처 : '촛불 시위'- 구글 검색>



분명 이곳에는 광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이곳은 우리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광장’ 이 되어버렸다.


2009년 8월 1일

드디어 이 역사적인 장소는 공식적인 ‘광화문 광장’ 으로 기억을 이어가게 되었다.

한양의 ‘육조 거리’를 복원한다는 거창한 의미를 찾아내지 않더라도, 지난 몇년간 이 곳에서 있었던 여러 기억들만으로

이미 광화문 광장 복원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기대와 실망, 그리고 혼자만의 착각-




시청 앞 광장, 청계천 복원으로 치솟던 사람들의 기대감은

2009년 여름, 광화문 광장의 복원을 앞두고 그 절정에 이르는 듯 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큰 기대 만큼 크게 다가온 실망감.

나는 새롭게 공개된 광화문 광장을 접하고서는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실망한 사람은 나 뿐인 듯 보였다.






-광화문에 광장이 없다-




이 광장은 여러 개의 작은 광장으로 모여있다.

광화문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 ’육조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 한국의 대표광장’…등

난 각각의 특색을 가진 광장들이 서로 조화되어 재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냈길 기대했다.

...기대가 무너지는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나의 실망과 달리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아이들과 분수 쇼를 즐기는 모습을 보며 어딘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이 착잡했다.

물론, 새롭게 바뀐 광화문 광장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기대가 그만큼 컸기에, 실망도 컸다.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실패한 옴니버스 영화처럼 감동도, 재미도, 신비감도 없었다.






사소한 것들부터 하나씩 곰곰히 살펴보았다. 저 어색한 화분 벤치부터 전혀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딱 줄 맞춰 놓여있는 모습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거기다 땅에 뿌리내린 꽃도 아닌 화분.

누군가 디자인 해냈을 꽃화분 벤치를 보고 있으니 여기가 놀이동산인가 싶다.

시골집 앞마당에 놓여있을 널찍한 평상이 그립다.

 

 

 

 

 

 플라워 카펫?

거창한 의미를 꽃의 개수와 무늬로 나타냈지만 그런 것은 하늘을 날아올라 아래를 내려다봐도 알아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벨트로 구분해 놓은 이곳은

그냥 넓은 꽃밭, 꽃 전시장일 뿐이다.

photo zone이 있는 걸 보니 광장이라기 보다 꽃 박람회 온 기분이 든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수도 없는 광장.

광장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헛갈리는 순간이다.

아름답긴 하지만 인공적인 느낌이 강해 거부감이 든다.











그나저나..

이런 전망대는 조만간 철거해주길 빈다.

미안하지만 조악스럽다. 흉물이다.

 









갑자기 세종대왕 동상자리가 나온다. 세계 만국박람회의 한국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다.

탁트인 육조거리를 회복하긴 이미 글렀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세종대왕 동상을 가까이서 바라보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와 같은 스케일의 크기로 만들었다면, 우리의 눈높이로 편안히 바라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건 청계 광장에서 보던 물길과 많이 닮았다. 여기 또 만들어져 있는걸 보니 같은 컨셉인가?

자세히 보면 역사적인 일들이 새겨져 있다. 서쪽 물길은 비워져 있는걸 보니 나중을 위한 건가 보다.

길이 365m, 너비 1m의 물 길 ( 또 엄청난 의미가 있겠지…숫자 놀음은 지겹다.) ,

아니다. 물길보단 전시물이 더 맞겠다.








아이들은 그저 돌 위에 흐르는 물이 신기한지 손을 담그려 한다.

한 관계자께서 항시 감시를 하고 있다.

광장에 물길이 있다는 건 참 좋다. 하지만 이런 전시용이라면 결코 반갑지 않다.

대체 이 공간을 어떤 의도로 해석해야 할지, 너무나 어려운 문제다.









광화문 광장을 쭉 지키고 계셨던 이순신 장군 동상은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만 같다.

사방에서 뿜어대는 분수 역시 인공미가 철철 넘쳐흐른다.

적어도 역사적인 장소에서 역사적인 인물을 대하는 장소의 컨셉이라면

굳이 저렇게 인공적인 분수가 필요했을까?

동상이 순간 가벼운 장난감으로 전락해버린 기분이다.








동상 아래 단에는 벌써 물때가 꼬질꼬질 끼기 시작했다.

때가 묻어도, 낡아서 단의 한 귀퉁이가 닳아 없어져도, 

그때도 과연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분수라는 이름의 흥미로운 장치는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하루의 재미는 줄지언정 감동을 주진 못할 듯 하다.

특히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이 이 곳을 분수 공원인줄 알까봐 걱정이 된다.









회색 도시에 황량하기 그지없는 회색 광장.

광장엔 시민들을 위한 재충전, 휴식 공간이 있어야 한다면 적어도 이 곳은 아니다.









해치마당이라 불리는 이 곳 지하에선

말문이 막혔다...

어색하게 뚫린 지하철 통로, 3류 박물관 같은 분위기는 당장 교보문고로 도망치게 만들었다.









-에필로그-



답답한 마음과 실망감이 가시질 않는다.
내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도시민에게 광장은 숨구멍, 목구멍과 같다. 숨구멍은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또 목구멍은 소릴 내야지.

사람들은 광장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머무르고 떠나면서
숨쉴 수 있는 여유를 찾는다.

다양한 사람들은 다양한 삶을 남겨두고 가고 광장은 그 것들을 간직하면서 비로소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광장은 때론 무대가 되기도 하고, 문화 생산 공장이 되기도 하고, 배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넓은 광화문 광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러기엔 모든것들이 너무 좁아 보였다.

100년뒤, 아니 10년 후에 광화문 광장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플라워 카펫엔 꽃이 만발하고, 화분 벤치엔 꽃이 가득, 시원하게 뿜어내는 분수.

과연 그대로 일까? 

나는 10년 후에도 이곳이 '광장' 이길 바란다.